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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르네상스의 어두운 면
글쓴이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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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3-25 00:00:00


월터 미뇰로(Walter D. Mignolo) 르네상스의 어두운 면
The Darker Side of the Renaissance: Literacy, Territoriality, & Colonization


이 책은 1995년 출판되어 2000년대에 이서 2013년에도 재판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그 만큼 이 책의 중요성이 인정되었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뇰로의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뒤엎고 세계의 역사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미뇰로는 아메리카의 의식구조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르네상스 시대를 중심으로 탐색하고 있습니다. 미뇰로는 "문학, 기호학, 역사학, 문화 이론 등을 초학제적 연구방식을 통해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화 과정을 단순한 연대기적 나열이 아닌 유럽적 세계관과 인식론의 투사와 확장의 결과라는 사실을 언어, 기억 그리고 지도 제작술 문제를 중심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미뇰로는 "근대 서구 철학은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스페인과 유럽의 초기 식민화 경험에서 탄생하였다"고 보고 있는데, 특히 "서구의 인식론, 현상학, 해석학, 지도 제작술 등은 식민적 타자인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식민화의 주체로서 유럽적 자아 즉 백인의 이미지를 구축"했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미뇰로의 이 책은 한국의 식민지 연구와 탈식민지 연구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됩니다. 다들 아시지만, 한국의 식민지 시대 논쟁은 근대화 VS 수탈론의 대립으로 지루한 논쟁이 지속되어 왔고 아직도 진행중에 있습니다. 양측의 논쟁은 식민지 주체들의 사유를 검토하지 않고 그 사유의 산물들 중 일부인 정책과 그 결과만을 놓고 해석 격론을 벌이고 있는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서로 헤어나오지 못하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지거나, 양측의 주장을 일부분 긍정하고 종합하는 시도들이 있을 뿐입니다. 제주 4.3에 대한 논쟁도 근대화와 수탈론의 문제점과 동일하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제주 4.3 연구들은 그 원인을 식민지 유산 차원에서 검토하지 않습니다. 기존 제주 4.3 연구들은 마치 해방으로 인해 식민지 시대와 해방 이후 시대가 완전히 단절된 것으로 인식하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지식인들이 중세와 단절된 세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듯 말입니다. 해방 시기 사람들의 사유가 식민지 경험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가설을 설정하면, 미군정기 조상들의 행동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뇰로처럼, 일본 제국과 서구 제국의 세계관과 인식론이 우리의 의식을 어떻게 구성했는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Davis 등(2011)은 일본 교토 학파가 대륙철학을 수용한 측면을 밝히고 있습니다. Davis 등(2011)의 연구에 따르면, 일본의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학자들은 독일 철학을 수용, 변형합니다. 교토 학파란 20세기 교토 대학을 중심으로 서구 철학, 특히 독일 관념철학을 수용한 일본의 철학자들을 지칭하는 말인데, 이 철학군의 본류인 니시다 기타로 [Nishida Kitaro, 西田幾多郞)는 서구의 철학을 일본의 정신 전통에 동화시키려 했던 인물입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일본을 통해 서구철학을 수용했으니, 근대 서구 철학이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스페인과 유럽의 초기 식민화 경험에서 탄생했다는 미뇰로의 입장을 수용하면, 아메이카 원주민의 식민지 경험과 우리의 식민지 경험은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뇰로는 "16세기 예술, 문학 작품, 지도 등에 대한 엄밀한 분석을 통해 유럽 르네상스의 존재 이유이자 가치 그 자체인 ‘고전의 부활’이 실은 유럽 열강들의 식민 팽창 정책에 대한 정당화이자 도구"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르네상스의 어두운 면'입니다.

미뇰로는 "르네상스 시기에 만들어진 지도는 아메리카 대륙에 이름을 부여하였고 영토를 사유와 결부"시키면서 또한 "라틴아메리카 각지에 지명을 부여하거나 특정 지역에 대한 약도를 그리는 등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통치하기 위한 형식으로써 기능"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지도/영토의 관계 속에 자아를 개입시켜 서로 다른 지도를 비교하며 사유 방식을 대별시키고 있습니다. 지도는 세계와 자아에 대한 지각을 위한 개입의 공간으로, 지도에는 세계와 자아를 사유하는 방식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계 지도 속의 '근동' 혹은 '중동'은 유럽 중심적인 공간적 사유가 투영된 지역명입니다.

이 책에서 제가 관심을 갖는 부분은 지도제작과 영토성, 그리고 사유의 관계입니다. 작년부터 이 주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국내에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해외 연구들을 참조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한 일본 지리학자가 1930년대 일본 지리학회와 일본정부가 제작한 제국의 지도를 연구한 논문을 읽었는데, 일본이 의도적으로 만든 제국의 지도에 나타난 지도/영토/사유의 관계를 미뇰로의 입장에서 볼 수 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더 나아가 그 지도를 바탕으로 일본이 제주도에 설치한 알뜨르 군사기지에 내포된 영토와 사유의 관계를 파악하는 일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제공해 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점에서 미뇰로의 <르네상스의 어두운 면>은 한국, 제주에 주는 함의를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인용부호 내용은 정동희, "주변에서 중심을 바라보기:월터 미뇰로의 <르네상스의 어두운 부분>", 트랜스라틴 29호(2014년 9월), pp.66-80.에서 인용했습니다.

Bret W. Davis, Brian Schroeder, Jason M. Wirth
Japanese and Continental : Conversations with the Kyoto School(Indiana University Press,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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